문범(1955- )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금까지 17회의 국내외 개인전을 비롯하여 광주비에날레( 2000년), 뉴욕 킴 포스터 갤러리 그룹전(1997), 로고스 파토스전 (1986-1999)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이번 PKM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1999년 이후 5년 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작가의 미발표 신작 30여 점이 소개된다. 특히 설치미술,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표현의 장르가 넘치는 요즘 추세 속에서 작가 문범은 가장 전통적 장르인 벽면 미술작품(tablo)이 갖는 무한한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신선한 방법으로 심도 있게 탐구해 오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번 전시의 부제 '랜덤 랜드스케이프'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문범 작품 속의 이미지들은 어떤 구체적 대상을 지칭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환상 속의 공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우연적이고 비대상적인' 일종의 '발견된' 풍경화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의 작품은 작가가 재료를 다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재료의 물성과 작가의 손놀림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비의도적 이미지로 특성 지어 진다.
이번 전시에서 문범은 3종류의 다른 재료를 통해 각기 다른 종류의 이미지 공간을 창조해 내고 있다. 첫째, 자동차 도료라고 하는 공업용 소재와 스프레이로 제작된 금속적 광택을 가진 다양한 종류의 산뜻한 단색화면과 그 위에 부분적으로 흘러내린 도료의 텍스츄어의 결합은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미니멀 조각이나 회회의 표면을 뚫고 침투하여 순간 그 속의 끝없는 공간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단색의 오일스틱을 사용한 화면은 마치 한국의 전통 수묵 풍경화를 연상시키듯이 공간적이고 몽환적이다. 그러나 작가가 제작 과정 속에서 어떤 특정 풍경을 염두에 두고 화면을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화폭과 재료, 그리고 손가락이라고 하는 가장 원초적인 표현의 도구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그러한 자발적인 풍경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셋째, 작가는 사진작품을 통해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사물들이 놓여있는 상황을 미세하게 포착, 매우 긴장되고 표현성 풍부한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서 드러나는 문범의 작업 의도는 삶의 경험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일상적 디테일들이 작가의 예술행위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섬세하게 교차하면서 예기치 않게 탄생시키는 환상적 아름다움을 '평면' 작품 속에서 '발견'해 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