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이엠 갤러리는 3월 27일부터 5월 3일까지 '문화적 신체 : 이불의 드로잉'전을 개최한다.
이불 (1967년생)은 국제 미술계에서 그 역량을 높이 인정 받으며 가장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 젊은 예술가중 한 사람이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80년대 후반에 작가로 데뷔한 이불은 그때까지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페미니즘' 이슈를 퍼포먼스와 설치, 조각 작업등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함으로써 미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실제의 생선에 화려하면서도 조악한 인조 장식물을 결합하여 원래 형태의 변모과정과 썩어가는 생선의 '악취'를 작업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일련의 조각물은 외부적 힘에 의해 규정되어온 '여성'의 정체성 및 고정관념에 대한 반기이자 비판을 보여준 파격적인 작업이었다. 이러한 조각물 뿐 아니라, 낙태등 여성문제를 다룬 작가의 과격한 퍼포먼스 역시 도식화된 여성성의 굴레로부터 탈피를 주장하는 행위로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후, 1997년 뉴욕의 MoMA Project Gallery 개인전에 설치된 생선과 백합이 어우러진 조각 작품이 '악취'를 이유로 전시 사흘만에 미술관측에 의해 철수된 사건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국제 미술계의 논쟁과 관심을 더욱 증대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이때 철수되었던 조각품은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에 의해 이듬해 리옹 비엔날레에 같은 모습으로 재현 설치되었다. 1998년,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수상 제도인 휴고 보스 프라이즈의 6명의 최종 후보 작가중 한명으로 선정되어 뉴욕 소호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후보작가전을 갖는 영예를 얻은 이불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및 본 전시 작가로 동시 출품하여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왔다.
특히 2001년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과 필라델피아 패브릭 워크샵 & 뮤지움에서 출발한 노래방 프로젝트 개인전 'Live Forever'가 금년도와 내년 상반기까지 뉴욕의 뉴 뮤지움을 비롯해 미국 전역의 주요 미술관 6군데를 순회하게 된 동시에, 프랑스의 디종 컨소시엄과 마르세이유 현대 미술관에서는 작가의 몬스터 조각과 사이보그 조각만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순회 개인전이 올 봄에서 겨울에 걸쳐 이어진다.
퍼포먼스 및 인조 장식물, 생선등을 이용한 조각을 통해 '여성성'의 문제에 주목한 초기의 작업부터 사이보그+몬스터 조각, 노래방 설치, 비디오 프로젝션등 보다 다양화된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이불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코드는 사회를 지배하는 기성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대중문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다. 작가는 남성중심 시각에 의해 왜곡된 여성성에 대한 공격,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사이보그 및 인간과 동물이 결합한 몬스터 이미지의 탐구, 그리고 동양이라는 경계를 넘어 범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노래방 문화가 갖는 대중적, 시대적 의미 읽기 등을 통해 타자로서의 여성의 몸과 이것과 공통적 맥락을 이루는 동시대의 다양한 문화적 확장체들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불의 작품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자 미덕은 그 주체가 첨단의 문화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실제의 결과물들은 엄청난 수공의 과정을 요구하는 매우 전통적인 조각 제작의 방식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문화적 신체 : 이불의 드로잉'전 이라는 타이틀로 개최되는 이번 피케이엠 갤러리 개인전은 작가의 폭넓은 예술적 사고와 개념이 하나하나의 구체적 프로젝트로 발전되어가는 필수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드로잉 작품들로만 구성되어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특히 다이나믹한 사고의 발전과정을 겪은 90년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제작된 드로잉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관객은 전시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지난 10년간 작가의 의식을 지배한 구체적인 관심사와 나중에 그것들이 어떻게 실제의 작품으로 가시화되었는지를 넓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실제의 작품으로 실현되기도 하고, 또는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 아이디어에만 머물렀던 작가의 다양하고도 진지한 관심사를 여과없이 보여주게 될 이번 드로잉전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고의 단계를 거친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다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에는 미발표작 30여점을 포함하여 45점의 드로잉 작품이 소개되는데, 'Fish', 'I Am an Asian Woman','Cyborg','검은머리' 등의 주제로 분류되는 작품들은 제작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치열한 사고의 생생한 기록인 동시에 그 자체가 독립적으로 높은 작품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이번 드로잉전은 3월 21일부터 삼성미술관 로댕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조각 및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전과 더불어 작가의 작품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